전라남도 구례군의 문척면 죽마리에 위치한 산이다(고도:542m). 섬진강이 서쪽에서 오산을 감돌고 흘러 동쪽으로 빠져나간다. 『신증동국여지승람』(남원)에 "오산은 유곡(楡谷)의 남쪽 15리에 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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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오산]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에 있는 높이 531m의 산이다.(동영상 출처 : 두산백과 두피디아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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충청남도 부여군의 부여읍 능산리(陵山里) · 염창리(鹽倉里)에 걸쳐 있는 산이다(고도:221m). 오석산(烏石山), 오적산(烏積山)이라고도 부르는데 까만 돌이 나오는 산이라 한다. 백제 때부터 삼령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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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국 선종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다섯 사찰. 정부가 주지를 임명하는 관제(官制) 사찰이다. 중국 남송(南宋) 시대에 정부가 특별 보호를 위해 설치한 것이 시초이며, 사미원(史彌遠)의 주상(奏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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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에 있는 산. 높이는 531m로, 지리산을 마주보는 자라 모양의 산으로 야트막하고 능선이 부드러워 가족 등반에 적당하다. 산행은 죽연마을에서 시작해 산길을 돌면 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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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종(禪宗)사원의 격식제도. 본래는 인도의 5정사(精舍)에서 생겨났다고 전해지며 중국 남송 초, 강남지방에 5산의 선사(禪寺)를 정하고 영종(寧宗, 재위 1194~1224)의 대에서는 5산 밑에 10개의 절을 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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5가지 산증(疝症)을 통틀어서 일컬음. 즉 석산(石疝) · 혈산(血疝) · 음산(陰疝) · 투산(妒疝) · 기산(氣疝)을 말한다. 산증의 항을 참조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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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기도 남서부에 있는 시. 경기도의 남서부, 경도상으로는 동경 126° 59′ 07″~127° 06′ 21″, 위도상으로는 북위 37° 07′ 27″~37° 11′ 55″에 위치한다. 동쪽으로는 화성시 동탄동, 서쪽으로는 화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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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안남도 남포시 대대동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. 본래 용강군 대대면에 소속된 리였는데, 1914년에 리가 폐지되면서 마을이름으로 이용되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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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정의]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와 염창리에 걸쳐 있는 산. [개설] 오산(烏山)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와 염창리에 걸쳐 있는 180ⅿ의 산이다. 백제 사비기에 신성시되었던 삼산(三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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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정의] 경상북도 구미시 원남동에 있는 자연 마을. [명칭유래] 오산천변(烏山川邊)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.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[新基]라고도 불렸다. [자연환경] 오산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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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선이 사는 곳. 우리 나라의 별칭. 高名早飛於鶯牓 重望尙屹於鼇山(고명조비어앵방 중망상흘어오산 ; 높은 이름을 일찍 앵방-과거 급제 명단-에 날렸고, 두터운 덕망은 우리 나라에 높았다.)<하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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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주부(蘇州府) 오강(吳江) 사람으로 자는 정지(靜之), 호는 인암(訒庵)이다. 명(明)나라 때의 관리이다. 정덕(正德) 3년(1508)의 진사(進士) 출신으로 벼슬은 형부주사(刑部主事), 원외랑(員外郎), 순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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발해(渤海) 동쪽에 있다고 하는, 신선이 사는 다섯 산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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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안남도 덕천시 오산동 승리산의 남쪽에 있는 산. 자라처럼 생겼다. 오산이라고도 부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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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국 푸젠성 푸저우에 있는 산. '우스산[乌石山]'이라고도 한다. 당(唐)나라 때 '민산[闽山]'이라는 명칭을 하사받았으며, 송(宋)나라 때에는 군수(郡守)였던 청스멍[程师孟]이 산을 둘러보다가 이곳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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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통 연희를 동반하던 봉래산 형태의 무대 구조물. 산대는 전통 연희를 동반하던 봉래산 형태의 무대 구조물이다. 산대에는 고정형 대형 산대인 대산대(大山臺), 이동형 소형 산대인 산붕(山棚), 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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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 중기의 문신. 명나라에 보내는 대부분의 외교문서를 담당, 명나라에까지 문명을 떨쳐 ‘동방문사’라는 칭호를 받았다. 한시에 뛰어나 한호의 글씨, 최립의 문장과 함께 송도삼절로 불리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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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. 1919년 경기도 수원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. 의열단에서 항일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.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. 호는 오산(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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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말의 독립운동가. 미국에서 공립협회를 창설하고 《공립신문》을 창간하였으며, 귀국하여 신민회 조직에 참여하고, 《해조신문》을 창간하여 독립운동과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. 광복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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